정미나(진보정의연구소 전문위원)
정의당의 당직선거가 시작됐다. 당 대표 후보자들은 저마다의 공약을 내세우고 있지만, 공통으로 정의당을 ‘정책 정당’으로 만들겠다는 것에는 뜻을 모으고 있는 듯하다. 그만큼 향후 정의당이 ‘정책’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있다고 볼 수 있다.
‘정당’이라면 자신들의 ‘정책지향’에 부합하는 ‘정책’을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정책 정당’이라는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이 ‘정책 정당’을 강조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 양대 정당이 ‘정책’을 통해 국민들에게 평가받고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나 인물, 혹은 어느 한쪽의 반대여론에 편승한 반사이익 등에 기대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의당이 ‘정책정당’을 강조하는 것은 양대 정당의 정치행태에 ‘비판’을 가하고, 나아가 이런 ‘구태’를 뛰어넘어 정의당의 ‘지향’을 담은 ‘정책’을 통해 국민들에게 평가받고 선택받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의당은 ‘정책 정당’인가?
정의당은 비정규직 정당임을 표명한 동시에,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공표했다. 따라서 우리당이 내세우는 개별 정책은, 이러한 근본 지향에 부합하는 정책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정책들이 비정규직 및 복지정책에 직접적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역으로, 어떤 정책을 내놓든지 개별 정책적 입장이 우리당의 근본적 정책지향과 부합되는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칼럼에도 썼듯이, 국민들은 개별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과 효과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개별정책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해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개별 사안마다 우리당의 국가비전과 연결시켜 설명해내야 한다. 즉, 개별정책마다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국민들이 ‘정의로운 복지국가’, ‘비정규직을 위한 방안’이라는 눈으로 새롭게 정책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일관된 ‘해석의 틀’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은 우리의 ‘개별 정책’과 ‘근본적 정책지향’을 서로 연결시킬 수 없고, 결과적으로 우리당의 정책지향은 실체 없는 공허한 외침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당이 내놓는 개별 정책들은, 이를 아우르는 일관된 정책 지향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있는가?
필자는, 지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논쟁 과정에서 우리당이 공식적으로 내놓은 입장을 돌아봄으로써, 우리당의 한계와 대안을 부족하나마 모색해보고자 한다. 특히, 국민연금 문제는 복지정책에서 핵심 이슈라는 측면에서, 본 사안은 우리당의 근본적 정책지향을 알리고 한국정치에서 유일한 ‘정책 정당’임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1.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여, 기존 입장 뛰어넘기: 국민연금 강화가 우리의 대안?
지난 5월 26일 여야는 공무원연금 협상의 결과로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 기구 및 국회특위 구성에 합의했다. 핵심 쟁점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 및 기여율 논쟁이었고, 이 논쟁은 새정련 주도로 이루어졌다.
정의당은 이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새정련과 입장을 같이 했다. 즉,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에 찬성했으며, 기여율 논쟁에서도 새정련과 같은 맥락에서 정부를 비판했다. 물론 기초연금 확대 역시 강조했지만, 이는 새정련 일부 의원도 주장한 바 있으며, 기본적으로 국민연금 강화라는 큰 틀에서 새정련과 입장을 같이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새정련이 주도하고 새누리당 및 청와대가 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우리당이 새정련과 유사한 입장을 내놓는 것이 하등 주목받을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략적으로는 아쉬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책 지향이 바로 그것이었다면,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꿋꿋하게 우리의 정책적 입장을 표명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정책적으로도 그러했는가?
우리당은 지난 5월 29일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향후 과제”라는 논평을 통해, 공적연금 강화 방안 중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사각지대 해소를 우선적인 과제로 제시했으며, 기초연금은 ‘현 노인세대’를 위해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논평 속에 ‘비정규직’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며, 나아가 이러한 ‘공적연금 방안’을 통해 ‘어떤’ 복지국가를 만들지에 대한 비전 제시 또한 부재했다.
단순히 비정규직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나 국민연금 이외에 다른 방안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보다 근본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노동시장의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국민연금 이슈에 한정해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함으로써, 우리가 천명한 ‘비정규직 정당’이라는 정체성이 복지정책의 핵심인 공적연금 강화 방안에 드러나지 못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노동시장에서 비교적 안정적 일자리, 이른바 정규직으로 대변되는 고용이력을 가진 국민들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민연금 강화가 필요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국민연금 강화여부를 포함해 비정규직 및 고용이력이 불안정한 현재의 노동시장 문제를 포함한 대안을 제시했어야 하고, 이런 방향을 충분히 밝힐 때 정의당의 ‘정책 지향’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도 강화하고 기초연금도 강화하자는 나열식 정책 제안이 아니라, 고용이력이 비교적 안정적인 정규직 등을 포괄하는 제도와 고용이력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등을 포괄하는 제도를 구분하여 제시함으로써, 논평에서도 밝혔듯이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노후 생활이 보장되도록”하는 정의당의 ‘정책’을 보여줘야 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제도 설계 자체가 재분배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회연대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당은 국민연금제도 자체를 찬성해왔고, 앞으로도 국민연금 유지를 위한 ‘기금안정화’에 일정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하는 현실과 우리가 제시한 ‘정책 지향’에 맞게, ‘기존입장’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공적연금의 경우,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해소만으로는 점점 커져가는 노동시장 양극화 및 노동 유연성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정규직 정당을 천명한 이상 비정규직의 처우개선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현실에 맞는 ‘공적연금’ 체계를 새로이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새로운 방안 모색에 있어, ‘유연한 대처’: 사적연금을 배제한 공적연금으로만?
한편, 우리당은 이번 논평에서 “사적연금에 대한 추가 가입 없이 공적연금만으로 ...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방향”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사적연금과 공적연금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함으로써, 이미 퇴직연금을 포함한 사적연금 시장이 존재하고, 동시에 형태적으로나마 ‘국민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가 다층적으로 변해가는 상황을 일정부분 외면한, 혹은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당위적’인 구호로 들릴 수 있다.
우리당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복지국가를 건설함에 있어서, 국가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정책 지향’을 갖고 있지는 않다. 즉, 사적연금인지 공적연금인지는 기본적으로 수단적 차원이며, 이를 어떠한 ‘방향’으로 조합해서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이 바로 우리당의 정책지향이 드러나는 부분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적연금을 통해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비교적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국민, 그리고 사적연금에 가입할 여력이 없는 국민을 구분해 ‘다층적 연금체계’ 방안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퇴직연금 규모의 급속한 성장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도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사적 혹은 공적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정의당’의 정책지향이라는 맥락에서 논의를 풀어갈 때, 퇴직연금을 비롯한 사적연금에 대한 공공성 강화 방안까지 새롭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새누리당의 경우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기 때문에 사적연금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반대하겠지만, 우리당이 우리만의 복지국가 구상 속에 사적연금 논의를 포함시킨다면, 이를 어떻게 운용하고 국가가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차별성’ 있는 논의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강조하는 ‘사회연대성(solidarity)’은 공적연금으로만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적 연금 자체가 사회연대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운용’하는지가 사회연대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사회연대성’ 차원에서 사적연금 운용의 ‘다양한 방법’들이 연구되고 있는 추세이다. 필자는 여기서 사적 연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연금까지 포함하여 논의할 때 우리가 포괄할 수 있는 정책 영역이 확대되고, 이를 통해 보다 거시적인 국가구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정의당에게 이번 공적연금 강화 논의가 ‘복지국가’를 핵심가치로 내건 우리당의 정책 지향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향후 비단 연금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양극화 및 거대 양당의 구태적인 행태를 고려해 볼 때, 비정규직 및 복지국가를 정책지향으로 내세운 우리당의 목소리를 높일 수 공간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정의당이 차별성 있는 ‘정책 정당’으로 국민들에게 부각되기 위해서는, 당장 시작되는 공적연금 강화 논의에서부터 우리당만의 정책지향이 담긴 정책방안을 내 놓아야 할 것이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374?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