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우 (진보정의연구소 부소장)
몇 해 전 대형유통업체 회장의 “소비를 실질적으로 하시나요 이념적으로 하시나요?”라는 트윗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업체가 매우 싼 가격에 피자를 판매하자, 동네 영세 피자 상인들의 처지를 걱정하는 사회적 비판이 높아졌다. 그러자 이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 소비에서 최대 효용을 얻는 것 최선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낸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소비의 최대 목표라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이념적 소비의 예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소비자들은 비싸더라도 공정무역 커피를 선호한다. 최근 관세 하락으로 외제차 가격이 꽤 내려갔음에도 애국심으로 우리 차만을 고집하는 소비자들도 많다. 이 업체 회장님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왜 이런 트윗을 했을까? 아마 우리 사회 소비자들이 점점 더 ‘가성비’에 집착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왜 낮은 가격에 집착하는가? 엘런 레펠 셀은 『완벽한 가격』에서 우리가 낮은 가격에 민감한 이유를 제품 원가에 대한 정보 부족과 낯선 사람과의 거래에서 찾고 있다. 거래에서 손해 볼지 모른다는 걱정에 낮은 가격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구매자와 판매자가 지역사회 구성원이라 서로 공생관계에 있다면 서로가 바가지를 씌울 가능성은 줄어 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의 가격에 대한 민감성은 낮아지고, 시장은 가격을 낮추기에 급급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기서도 아무런 사회적 관계가 없는 낯선 관광객은 바가지를 쓸 수 있기에 낮은 가격에 민감해 질 수 있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낮은 가격을 찾아 헤매는 현재의 우리 모습은 마치 관광객과 같다고 말한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호모 이코노미쿠스라 정의하며, 비용 대비 이익을 계산하는 효용 최대를 위한 노력을 인간 본성의 핵심으로 규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인간의 합리적이지 못한 구매의사결정의 예는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문제를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우리의 의사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 이 현상을 프레이밍 (framing) 효과라고 부르는데, 금전적 가치도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매우 가변적이다. 『상식밖의 경제학』의 저자 댄 애리얼리는 실험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에게는 시를 듣는 대가로 2달러를 지불할 수 있는지 물었고, 또 한 무리에게는 반대로 2달러를 받고 시 낭송을 들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고 나서 만약 공짜로 시를 들을 수 있다면 듣겠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2달러를 내야만 시를 들을 수 있다는 학생들은 35퍼센트가 들을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2달러를 받을 수 있다는 학생들은 단지 8퍼센트만 들을 것이라 대답했다. 이것은 사건의 프레이밍, 즉 어떤 정황에서 제안이 제시되었는가가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합리적이 못한 의사 결정의 예는 무수히 많다.
결국 우리는 합리적인 구매 결정을 하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착각하여 낮은 가격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대형마트에 값싼 피자를 사러 갔다가 꼭 필요하지 않은 다른 물건들 까지 구매할 수 있다. ‘싼게 비지떡’이라고 싸게 구매한 제품의 품질이 좋지 않아 몇 번 사용하지도 못하고 버리는 경우도 있다. 30분이면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데, 쇼핑을 위해 손수 차를 운전하여 비싼 기름까지 써 가며, 4-5시간을 소비할 수도 있다. 대형마트는 저렴한 가격을 위해 납품업체에게 부당한 가격을 요구할 수도, 노동자들 임금을 깎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형마트에서의 쇼핑이 정말 합리적인 의사결정인가? 실제 합리적이지 않지만 합리적일 것이라는 믿음에 대형마트에서 쇼핑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저렴한 가격에 중독될수록 지역경제 몰락, 임금하락, 제품 품질 하락처럼 그 대가는 가혹할 수 있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306?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