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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칼럼

  • [진보정의연구소_칼럼] 견딤의 힘

 

 

김정순 (진보정의연구소 사무국장)

             

목련꽃이 툭 떨어졌다. 바람이 불기는커녕 공기도 흐름을 중단한 듯한 고요속에서 목련꽃이 모가지채 툭 떨어져 내렸다. 눈부신 어느 봄날 어린신부가 입은 웨딩드레스보다 더 하얀 꽃은 하필이면 검고 더러운 내 신발위에 절묘하게 내려앉았다. 일분일초가 바쁜 출근길의 나는 순간 당혹감에 빠졌다. 단지 꽃송이 하나 떨어진 것뿐인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발을 움직여 서둘러 꽃잎을 털어내고 발걸음을 재촉해야함에도 그러질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언젠가부터 사소한 일에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증세가 생겼다. 초기엔 하루에 한두 번에서 나중엔 한 시간에 서너 번으로 잦아졌다. 처음에는 얕은 의학상식으로 부정맥을 의심했으나 병원을 찾은 후에야 우울증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작년에 아끼던 후배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 2년 전에도 가까이 지냈던 지역위원장이 생을 마감하는 일이 있었다. 한 명은 마른 꽃다발처럼 허공에 매달렸고 한 명은 낙하하는 꽃잎처럼 땅위로 떨어졌다. 둘 다 당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둘 다 공교롭게도 선거기간에 죽었다. 한 명은 지방선거기간, 또 한 명은 총선 때였다. 소식을 듣고 나는 허둥댔다.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기도 하고 때로 소리 높여 싸우기도 했지만 평생 함께 할 친구이자 동지라고 철썩같이 믿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껏 슬퍼할 수 없었다. 하필 중차대한 선거기간이었고 또 작년엔 선거파견을 나간 지방에서 맞이한 죽음이었던 것이다. 내 슬픔 따위에 오래 젖어있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으로 복귀했고 실제로 무난하게 일상을 이어갔다. 마치 그들의 죽음 따윈 애초에 듣지 못했던 사람처럼.... 그러나 사실은 그 시간이 나름대로 죽을힘을 다해서 스스로 견뎌내는 시간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견뎌내느라 나도 모르게 억누른 슬픔은  더 강해졌고 더 질진 형태로 터져 나왔다. 결국 봇물처럼 슬픔이 터져 나와 나중에는 스스로 어찌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급기야 병원신세까지 지게 된 것이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꽤 오랜기간,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죄책감에 시달린다. 지방으로 내려가기 얼마 전 후배는 자신의 집에서 저녁이나 하자며 연락했었다. 그런데 나는 항상 만나곤 하던 여의도가 아닌 교통도 다소 불편한 거기까지 가기는 조금 번거롭다는 생각을 해서 나중에 보자는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었다. 귀찮았던 것이다. 굳이 그곳까지 가야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지 않고도 떠들썩한 저녁식사자리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죽었다......

 

그 2년 전 죽은 위원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택시운전을 하는 틈틈이 그는 지역사무실을 찾아와 소식지를 같이 접어주고 당원들에게 전화도 함께 돌려주고 때때로 볼멘소리를 하는 나에게 막걸리 한 잔 그득하게 따라주곤 했었다. 그가 지역위원장이 되고 처음 치른 선거에서 패배하고, 나는 선거기간에 깊어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모든 실패의 책임을 그에게 돌리는 발언을 서슴치않았다. 그가 어쩌다 범하게 되는 실수를 놓치지 않고 비난했으며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이 많아졌고 결국 나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말았다. 물론 사직의 이유도 그가 제공했음을 잊지 않고 일깨웠다. 그가 집으로 두 번이나 찾아왔으나 끝내 나는 내 뜻을 꺽지 않았다. 그 후 우린 다시 같은 당에서 만났고 그는 이미 깊어진 마음의 병으로 자신조차 어찌할 수 없어 많이 허둥대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었다. 간간이 병원치료를 성실히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던 어느 날, 말쑥해진 모습으로 그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내 손을 잡으며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준 책을 내게 소개해주기도 했고 자신이 지금 다니는 병원이 얼마나 실력이 뛰어난지, 그곳의 전문의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이제 영업직이라 힘이 들긴 하겠지만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게 되었다며 ‘영업이사’라는 직함이 찍힌 명함을 내게 내밀었다. 이제 막 입사한 사람이 ‘영업이사’라는 게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의 성공적인 재기를 빌었었다. 
 

들이 떠나고 오랜시간,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깊은 상실감에 괴로웠다. 사소한 일에도 심장이 쿵 내려앉고 그럴때마다 또 얼마나 서늘하고 섬뜩한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견뎌내야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그날의 외면에 대한 대가로, 또 함부로 내뱉은 비겁한 비난과 변명의 대가로 스스로 견뎌내야 한다.

 

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다른 직장에서의 고연봉은 우리의 사명감이나 성취감, 자존감으로 바꾸어 살아가고 있다. 비록 생활은 비루할망정 이상을 위해 감수하고 또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우리를 버티게 해준 사명감, 성취감, 자존감은 서서히 방전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충전할 힘이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태이다. 그러니 힘을 기르며 견뎌낼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얼마 전 진보정치에 대해 묻는 질문에 누군가 지금은 참고 견뎌내는 시기여야 한다고 정의했다.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으니 무언가를 섣불리 하려고 하지 말라는 절망적인 얘기까지 곁들였다. 표현이 비록 가혹하긴 하지만 나는 일정부분 그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기에 우리는 너무 불안하다. 언제 도약할 수 있을지 모르는 기약없음에, 또 제대로 도약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에 우린 많이 지치고 아프기도 하다. 그러나 이 또한 견뎌내야 할밖에 달리 뾰족한 방도는 없는 것 같다. 어차피 견뎌내야 한다면 우린 좀 더 현명하게 견뎌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좀 더 건강하고 즐겁고 따뜻한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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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296?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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