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규 (진보정의연구소 전문위원)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가 불쌍하다며 자신의 경제정책이 ‘불어터진 국수’가 되 버렸다고 말했다. 적반하장이다. 국민들은 ‘경제민주화 국수’를 판다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 그것을 주문했는데, 주방장은 ‘재벌 대기업 나홀로 성장 국수’를 내놓고서 손님들이 먹지 않아 그 국수만 불어터졌다고 성질내는 꼴이다. 개콘의 “몸이~ 아파서~”처럼 “만들 줄 아는 게~ 이것 밖에 없어서~”라고 변명을 내놓아도 욕먹을 판에 짜증을 내고 있으니 국민들은 더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다.
19대 국회는 ‘경제민주화 국회’로 출발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약속했다.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초, 박근혜 비대위원장 시절의 한나라당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폐해 방지 ?하도급 제도 전면 혁신 ?프랜차이즈 불공정 근절 ?덤핑입찰 방지 ?연기금의 주주권 실질화”를 발표했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의 틀을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동반 발전하는 행복한 경제시스템으로 만들겠다”며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 제고로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 일감몰아주기 등 총수일가의 부당내부거래 금지규정을 더욱 강화하고 부당이익 환수, 대기업 신규순환출자금지, 다중대표소송제 단계적 도입, 금산분리 강화 등”을 약속했었다.
그런데 집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는 무슨 약속을 얼마나 지켰나? 아마도 정부 여당의 인사라면 고작해야 “하도급거래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공정위 전속고발권 보완, 일감몰아주기 규제, 신규순환출자 금지,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 축소, 가맹사업 규제를 이뤘다”고 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들은 여론과 야당의 요구에 떠밀려 이뤄진 것이고, 실효성은 반감된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박근혜 대통령의 2013년 7월 “주요 경제민주화법 통과” 발언 이후 정부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논의는 사라지고 말았다.
개탄스러운 일은 경제민주화 종료 이후 전경련의 요구를 수용한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후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재벌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근절을 위해 도입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3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 의제)의 사문화가 그것이다. 전경련은 일감몰아주기 수혜기업의 1차 판단기준인 정상거래비율(예:글로비스(수혜법인) 매출액중 현대자동차(일감몰아준 법인)와의 거래에 의한 매출액 비율)을 일률적으로 ‘30% 초과’로 정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고, 박근혜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중소기업?중견기업에 대해서는 특수관계법인과의 정상거래비율을 50%”로 높여 일감몰아주기 수혜법인의 범위를 줄여주었다. 또, 전경련은 “수혜법인이 국외소재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를 특수관계법인에 대한 매출액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한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한편, “중소기업 간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매출액, 수혜법인의 주식보유비율이 50%이상인 일감몰아준 법인과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매출액, 수혜법인의 주식보유비율이 50%미만인 일감몰아준 법인과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매출액 중 수혜법인의 지분상당액, 지주회사인 수혜법인이 자회사?손자회사와 거래한 매출액 등을 일감몰아주기 과세대상 매출액에서 제외해주었다. 그밖에도 ”수혜법인 중 외국인 지분율이 50퍼센트 이상인 외국인투자기업은 일감몰아주기 과세대상에서 제외”시켰으며, 얼마 전에는 “프로스포츠구단 운영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수혜법인이 특수관계법인과 거래한 광고 매출액”을 과세제외 매출액으로 인정해주었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재벌 대기업의 요구에 충실하게 응답하고 있다.
국정책임자로서 자신이 진심으로 한국 경제를 불쌍하게 여긴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양극화 심화를 해소하고 경제주체들의 균형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더 많은 경제민주화 과제를 국정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삼성, 현대자동차 등 소수 재벌 대기업만의 ‘나홀로 성장’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들도 함께 행복해지는 성장을 모색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최경환 노믹스는 ‘임금정체와 비정규직 문제’가 경제 활력의 저해요인이라고 진단하고서도 정작 실효성이 없거나 중산층과 서민들의 삶을 더 위태롭게 하는 처방만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2012년 11월 새누리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자는 “...많은 국민은 행복하지 못하다. 지금까지 대기업과 수출이 주도하는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고수해 온 결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공정과 상생의 풍토와는 멀어져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보수적인 시각에서도 당시 한국경제의 양극화 상황이 심각해보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경제 상황에서도 이 말은 타당한 진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박근혜 정부에게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불쌍한 한국경제를 위해 경제민주화 추진해달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지난 2년 동안의 질림 때문이 아니다. 그동안의 국정운영에서 ‘박근혜식 경제민주화 노선’이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경제민주화 노선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노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진보정치가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더 많은 정치권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진보정치는 국민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자영업자들의 생활을 개선하며, 재벌대기업 개혁과 중소기업 성장을 이루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들에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사회복지정책이 결합된 ‘모두를 위한 경제성장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작은 것이라도 경제민주화 의제가 국민들의 경제적 삶에 도움을 주며, 진보정치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정치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정치도 이미 또 한 번의 시험대에 섰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252?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