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25년 대통령 선거에서 만큼은 지금의 당명으로 남기기를 지도부와 당원 여러분들께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이번 2025년 대통령 선거에서 만큼은 ‘정의당’을 당명으로 남기기를
지도부와 당원 여러분들께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당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서울 마포구 당원 조현익이라고 합니다.
먼저 사과드립니다. ‘글 제목에는 새로운 당명만 기입하라’ ‘기존 당명인 정의당은 안 된다’는 규칙 탓에 궁여지책으로 단 제목을 먼저 보시고 웬 미친 놈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분탕질을 치러 온 듯 하여 짜증나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사회대전환 연대회의”의 시도가 진보정치세력 안에서도 그리고 대외 유권자들에게도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지난 13년간 누군가에겐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 진보정치의 상징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정치활동을 하는 이유가 되는 이름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함께 세상을 바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였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세상을 바꿀 힘을 키우려는 상징이었던.
그 이름 “정의당”이 가진 의미와 가치에 대해 누군가는 항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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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 ‘정의당’ 당명을 좋아해서 쓰는 사람은 없다는 그런 말이 있었지요.
정의당은 고비를 돌파하려고 몸부림칠 때(2012년 창당, 2013년 당명 개정, 2015년 4자 통합, 2024년 ‘녹색정의당’ 창당과 패배 이후)마다 당명 개정을 쫓기듯이 논의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때마다 막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았던 당명이 ‘정의당’입니다.
사실 ‘정의’라는 표현이 진보적 가치나 공동체를 나타내기에 충분하지도 않고(오히려 그 개념이 독선적일 때가 많고), 이해관계와 가치를 두고 시민들을 설득하고 조정하려는 정치/사회운동의 측면에서 ‘정의’와 부정의를 강조하는 것이 옳은 태도는 아니라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저 역시 이 의견에 매우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런 애매한 ‘정의당’ 이름이 지금까지 쓰일 수 있었던 것은 왜일까요?
12년의 역사를 남긴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이 당시에는 ‘정파로 분열되어 민중의 기대를 저벼렸다’는 멍에를 안고 있긴 하지만 지금에 와서 ‘민중과 사회운동과 연결된 강력한 진보정치의 상징’으로 언급됩니다.
당명으로서는 4년 밖에 쓰이지 못했지만, 그 기간동안 독자적 진보정치/사회운동의 상징으로서 미래의 운동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남긴 ‘진보신당’이라는 이름 역시 그 의미를 남기고 있습니다.
하물며 그 두 이름보다 긴 역사를 가진 ‘정의당’이라는 이름은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지금 정의당의 과거 노선이 진보정치세력 몰락의 원흉으로 여겨진다 하더라도, 그 이름이 한국 사회에 남긴 긍정적 영향과 상징성이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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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에게 남아있는 ‘정의당’의 상징성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경험/체험한 것에 따라 그의 가치관과 정치관이 자리잡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 개인의 경험을 다소 길게 말해보겠습니다.
저는 ‘소련을 무너뜨리며’ 태어난 1991년생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커녕 노무현이 집권하기만 해도 빨갱이가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말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다가, 고등학생 시절 처음 접한 잡지 “한겨레21”이 말하는 애국주의 비판과 환경/생명윤리 이야기에 빨려들었습니다(당시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학생들에게 황우석 논문조작의 충격이 여전했더랬지요). 같은 지면에 늘 실리던 노동권과 젠더/성소수자 이야기 등을 그렇게 처음 접하고, 진보정치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첫 투표권(2012 총선)을 당 해산을 막으려는 마음으로 진보신당에 행사한 직후,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관련 킨텍스에서의 폭력 사태를 생중계로 보았습니다. 울화통이 터지던 와중에 당시 당원 진중권이 “통합진보당에 실망했겠지만 이 당의 당원이 되어 같이 바꾸는 데 힘을 달라”는 트윗을 남긴 것을 보고(아아,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당원이 되기로 처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정의당이 저의 첫 정당이 되었지요.
정의당이 태생적으로 급조된 정당이고 당 외부의 진보정당/정치세력에게 많은 원한을 살 수 밖에 없는 역사를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정의당’이라는 이름의 상징성은 아주 무겁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에게 여의도와 현장을 두루 다니며 진보정치를 배우고 실천할 기회의 공간이었습니다. 또 지인들에게 진보정치의 필요성을 설득할 때 “정의당이라는 당이 있는데…” 라는 말로 시작하게 하는, 저의 친구들을 진보정치에 끌어들이게 하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제가 활동하던)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에 사람들이 모이고 제가 다니던 학교에 정의당 XX대학교 학생위원회가 생길 때의 뿌듯함이란.
3. 당원과 유권자들에게 남아있는 ‘정의당’의 상징성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겁니다. 정의당이 어렵사리 자리를 잡는 시기인 2010년대 중후반에 저처럼 첫 정당으로서, 또는 오랫동안 다른 활동을 하다가 다시 정당활동을 하려고 정의당에 온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청년/학생, 청소년, 성소수자, 문화예술, 녹색/생태, 동물권(그때만 해도 ‘동물복지’라는 표현을 더 많이 썼죠) 등 부문단위를 통해 합류한 분들, 내가 사는 시·도의 지역조직이 허약하니 여기서 뭐라도 해보겠다며 합류한 분들, 내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하겠다며 당직자/실무자로서 또는 공직후보자로서 정의당에 합류한 분들.
그리고 이처럼 깊게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평등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기에 그 뜻을 지지하는 마음에서 정의당에 가입하고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기여할 거리를 찾아 일상에서 소소한 도움을 주던 분들까지.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상징, 바로 “정의당”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분들이 2024년 “녹색정의당”이라는 이름을 갑자기 받아들었을 때 질겁하거나 탈당하거나 “정의당 이름 따라하는 짝퉁 정당인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라며 반문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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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저희가 퇴물일지언정, ‘정의당’의 이름은 기득권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녹색 정치나 페미니즘 정치를 하려거든 녹색당이나 페미니즘 정당에서 활동하지, 왜 굳이 [당시에는 이런 부문에 대한 고민이 한참 뒤떨어졌던] 정의당에서 힘들게 활동하냐고.
그의 답은 이랬답니다.
정의당 안에서 녹색 정치를 하고 페미니즘 정치를 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달라고. 우리는 정의당의 힘이 더 세지도록 사람들을 당에 모아낼 것이고, 또 그런 정의당을 내부에서 바꿈으로서 한국 사회에 녹색 정치와 페미니즘 정치를 더 드러내보이고 싶다고.
많은 분들께 정의당이라는 이름은 그저 ‘내 인생의 역사에 존재하는 수많은 진보정당 이름 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정의당에서 활동하고 정의당을 조용히 응원하던 많은 분들에게, 정의당이라는 이름은 ‘한국 사회를 바꿀 도구이자, 내가 바꿔내야 할 나의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압니다. 당 안팎에는 저희 같은 사람들이 정의당과 진보정치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귀담아 반성할 부분이 많습니다. 저처럼 정의당에서 처음 정치와 운동을 배우고 실천했던 사람들이 어쩌면, 진보정치와 사회운동에서 사라져야 할 퇴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같은 사람들이 기득권에 찌든 퇴물일 지언정, 사람들이 정의당이라는 이름에 투영했던 그 마음마저 기득권이라거나 청산해야 할 대상일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당에 남아 헌신하는 사람들, 당을 조용히 떠나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를 상징하는 그 이름이
불과 2주 간의 당명개정 논의를 통해 청산되어야 할 그런 운명이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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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총이” 같은 “정의당”이 이번 대선까지는 남아있길 바라며
“민총이”라고, 2020년에 만들어진 민주노총 공식 캐릭터가 있습니다(소개 영상 링크). 처음에 발표되었을 때엔 요상한 이름하며 애매한 외모(이쁘지도 귀엽지도 간지가 흐르지도 않는)하며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없고 악평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볼수록 매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고, 당장 새 캐릭터를 만들자고 하려니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서 아쉬울 것 같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민총이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시작으로 새로운 진보정당, 새로운 진보정치세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 기회에 그간 ‘진보정치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상징하는 당 이름을 바꾸려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3년의 세월을 함께 한 공동체의 이름, 13년간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정치를 설명하며 유권자들에게 상징으로 남긴 이름. “정의당”의 이름을 여러분은 정녕 그렇게 깔끔하게 털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진보정치세력간 반목의 세월이 길었기에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지기까지 또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시간동안 지금의 정의당 당원들과 지지자들도 정의당의 이름을 무사히 장례치르며 잘 보내주고 새로운 이름 아래 단합할 여유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급조되고 떠밀려서 애정 없이 만들어지는 당명이 아닌
지금 모두가 썩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더라도 모두에게 조금의 정이 남아있는 이름으로,
이번 2025년 대통령 선거에서 만큼은
‘정의당’을 당명으로 남기기를
지도부와 당원 여러분들께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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