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선입니가.혁신위와 간담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응해서 최선을 의견을 내는 것이 당원이자 전직 당대표의 도리라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 만나서 이야기 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한 것 같아 핵심적인 주제에 대해서 글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가능한 한 건조하게 쓰려했고 촌철살인의 능력이 없다보니 장황해졌습니다.
1. 정체성과 강령 “민주당 2중대? 정책의 차별성과 정의당의 효능감”
1) 정당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 정당의 정체성이란 대개 보수 진보의 스펙트럼상 어디에 위치하느냐의 문제로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이는 내부적으로는 강령에 표명되어 있고 대외적으로는 핵심적인 정책기조에 의
해 평가되고 인식되어집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책 그 자체만이 아니라 정치적 태도와
행동양식으로 평가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 새롭게 대두되는 의제, 예를 들면 젠더 문제나 기본소득 같은 것이 과거 진보 보수의 구분
과는 다른 경계선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2) 현 강령의 문제의식
- 완결적이거나 배타적인 경향이 있는 사상이나 이념체계보다는 진보적 가치중심의 정체성을
정립하려했습니다. 자유, 평등 , 평화, 생태 , 연대의 가치와 7대 국가비전의 기조에 대개(완
전히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도) 동의하는 누구나 당원이 될 수 있고 당내에 다양한 견해의
존재와 이를 바탕으로 한 당내활동을 폭 넓게 보장하는 (엘리트 정당이나 전위정당이 아닌)
대중정당임을 분명히 하고 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한 것입니
다.
- 당시 당명을 사민당으로 정하고 사민주의지향을 분명히 하자는 주장이 규모 있게 제기되었
으나 이에 대한 다수의 동의가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다만 사민
주의를 진보주의의 하나의 특정한 이념으로 보기 보다는 이를 바탕으로 한 북유럽 복지국가
를 실제하고 참고할 가치가 있는 모범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합의를 강령에 담게 되었습
니다.
3) 강령개정
- 시대의 변화에 따른 당의 가치를 강령의 일부 개정 또는 전면 개정을 통해 담는 것은 당연
하고 필요한 과정이라고 할 것이며 이때 당원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담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차산업혁명이나 코로나 이후의 세상
의 변화와 노동의 의미와 형태의 변화 같은 것도 담겨 질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 다만 당원 다수의 공감이 형성되지 않은 또는 공감을 형성하지 못한 일부의 의견이 부실한
과정을 통해 배타적인 수준으로 담겨지는 것은 매우 경계해야할 것이며 자칫 폭력적인 행위
가 될 수 도 있습니다. 논의과정이 잘 관리되지 못하면 문구 몇 개를 둘러싼 비생산적인 갈
등이 확대될 수도 있습니다.
- 강령에 핵심적인 의제가 결여되어 있거나 기조의 현격한 수정이 필요하지 않다면 강령의 해
석권한이 있는 전국위 등의 결의나 구체적인 정책의 당론화를 통해 재정립해나가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헌법에도 그 개정이 쉬운 연성 헌법과 그렇지 않은 경성 헌법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 보고자 합니다.
# 민주당 2중대론
- 정책적 차별성이 없거나 민주당의 잘못된 정책 또는 정치 행위에 대해 비판적이지 못하다는
인식과 평가가 2중대론의 근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가치도 정책도 차별성이
없다면 독자적인 정당으로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반면 모든 정책이 차별화되어야
한다거나 다른 정책에 대해 타협 없이 끝까지 반대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도 옳지는 않을
것입니다.
- 우리는 ? 보다 진보적인 가치에 부응하는 정책을 내세우고 ? 이는 실현가능하며 설득력
있는 정책이어야 하며(정책수립역량과 설득능력) ? 우리 정책의 실현에 한계가 있을 때는
대중의 구체적인 삶의 개선에 부응하는 타협도 구사하는 ? 결과적으로 보다 진보적인 정책
으로 견인하고 실질적 삶의 개선을 이끌어 내는 ‘정의당 효능감’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 나아가 사회운동이나 또는 소금정당과 같은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집권 가능한 정당으
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가치를 지키면서 대중을 설득하고 신뢰를 얻어가며 다수의 지
지를 획득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정당의 목표가 될 것입니다. 민주당 2중대 극복론은 ‘차별
성 있는 소수자의 비타협적 주장’에만 집중해 다수 지지를 획득하는 데 어려움을 초래하고
민주당의 대체제가 아니라 보완재로 영원히 머물게 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2. 당의 지도체제와 의사결정 구조 “책임정치와 숙의민주주의”
1) 현행 대표체제의 성립 배경
- 진보정당의 정체와 통합진보당 사태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으나 거대
정파의 횡포와 공식적인 의사결정과정이 무시된 정파 간에 이면에서의 조정이 당의 민주주
의를 결정적으로 가로막아 왔다는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이 있었습니다.
- 하나의 정당 내 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고 권장될 일이며 특정한 의견
그룹의 영향력을 확대하기위한 움직임 또한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비공개적인 때로
는 비밀리에 조직되어있으며 강한 결속력과 열성적인 활동가를 보유한 정파는 그 자체로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다수 당원들의 의사와 견해를 무시하고 소외시킬 가능성을 항상 가지
고 있습니다.
- 물론 의견그룹이 공개적으로 운영되고 일상적으로 당내외 정치적 사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
을 충실히 밝히며 당직후보나 공직후보자가 그 소속을 밝히고 출마하고 활동한다면 당원들
이 그 견해나 소속된 당직자를 판단하거나 지지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공개
적 정파활동이 격려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의무화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는 한계가 있
습니다.
- 집단지도체제(또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는 몇몇 정파들의 대표자들로 구성 되고 공식적인
토론과 숙의보다는 이면에서의 조정과 타협으로 당이 운영되어 1) 다수 당원이 실질적 의사
결정과정에서 소외되고 2)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과 혁신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3) 그 정치적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간의 정당운영 경험
을 바탕으로한 판단이었습니다.
- 평면적으로 보면 모든 지도체제가 그러하듯 장단점이 있습니다. 대표제도 독단적 결정의 가
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의 권한 내에서라면 다수의 의견과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대표의 독자적 권한을 어디까지 부여할 것인가, 어
떻게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에 착목하여 해결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2) 당의 의사결정체제
- 현재 당은 대의기구이자 숙의 기구인 전국위원회와 수백명 규모의 대의원 대회를 두고 있습
니다. 전국위원회라는 숙의구조를 만든 이유는 주요사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의 필요성뿐
아니라 자신의 또는 자신이 속한 정파의 견해를 상호설득하고 이에 따른 변경과 합의의 가
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 물론 숙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규모가 너무 크지 않아야 하고 주요의제에 집중 할 수 있
도록 의제가 관리되어야하며 사전의 충분한 정보 공유가 필요합니다. 당시 전국위원회는
실질적 참여인원이 50인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하나의 원칙으로 삼아 선거구당 선거
인수를 설정하였고 당원이 증가하면 이를 확대해서 규모를 유지해야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
습니다.
- 당대표는 전략적 방침에 대해 전국위원회를 설득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
고 이 범위 내에서 책임지고 당을 운영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 대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2인에서 4인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여 다수의 출마자
를 낼 수 있는 한두 의견그룹이 독점하기 쉽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출마해서 봉사하겠
다는 사람이 많아지고 민주적 경쟁이 이루어지는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소수 정파의 독점으
로 인한 다수 당원의사의 왜곡을 시정하기 쉽지 않고 대의원 대회는 숙의가 불가능하고 정
파간 세대결을 벌이는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3) 대안의 모색
- 대표의 권한이 강하고 부대표의 권한이 미약하다는 지적은 일정한 타당성을 갖지만 이를 정
파담합으로 인한 당원 민주주의의 훼손과 리더십의 약화로 책임정치를 불가능하게 할 가능
성이 높은 집단지도체제로(직책명을 무엇으로 하든) 전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 대표의 인사추천권 등을 일정 제한하고 상무위를 폐지하고 선출된 부대표의 권한을 강화해
대표단회의의 결정권을 강화하는 것은 검토해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표
단은 신속함을 필요로 하는 정무적 판단과 집행을 수행하는 기구이기에 부대표의 수를 지나
치게 확대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집단지도체제와 같은 단점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일방적 주장은 가능 하나 숙의가 불가능 한 수백 명 규모의 대의원대회에 예산 및 사업 심
의권을 주는 것은 실제 운영에 있어서 당원 민주주의, 당원의 지도부통제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보다 항상 더 민주적인 것은 아닙니다만 전
국위도 대의기구인 만큼 대의원대회를 폐지하고 그 권한을 일부는 전국위로 일부는 당원총
투표로 넘기고 당원 총투표의 시행 조건을 완화하고 활성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입
니다.
- 중앙위원회냐 전국위원회냐는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숙의 기구가 되려면 전국의원
회의 정원은 축소 조정되어야하며 대부분의 의제는 비대면회의를 통해 일상적으로 의사 결
정을 해나가도록 해야합니다.
# 결론을 말하자면 (개선의 필요는 있지만) 강령이나 대표체제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3. “과정으로의 초대”, 소통이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 정당에는 지도자가 있고 지도자는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당원들을 설득하고 이끌
어 갑니다. 선출된 당 지도부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적 직접민주주의는 바람직하지
도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합리적으로 부여된 권한 내에서라면 당장의 다수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도 할 수 있습니다. 고도의 정무적 판단을 일일이 노출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
다. 우리 당원들의 다수는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당원들은 계몽주의시대의 대중들이 아닙니다. 당 지도부는 가능한 모
든 의사결정과정을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의제를 제시하고 사전에 정보를
제공하고 사후에는 설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의제를 제시한다는 것은 고민도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상당수의 당원들이 지도부를 믿고 맡긴다고 해도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 제안서에 ‘당과 당원간의 소통의 채널이 없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
다. 채널이 부족하거나 더 다양화될 필요는 있겠지만 진실은 당 지도부가 소통하지 않은 것
입니다. 기업이건 정당이건 모든 조직의 운영은 소통입니다. 이제 각급 회의 과정과 결과,
각급 지도부의 소통을 의무화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패널티를 주는 강력한 제도화가 필
요합니다. 교육도 홍보도 소통의 아래에 있습니다.
- 당 게시판에 극단적인 주장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 지도부가 수시로 또 성실하게 소통
한다면 입을 다물고 있던 사람들도 입을 열게 되고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의견제시가 확대됩
니다. 이것은 디지털 소통의 법칙입니다. 제도만이 아니라 당의 문화 지도부의 태도가 바
뀌어야합니다.
4. 정의당의 효능감- 성과로서 신뢰받는 정당
- 올해 들어 당원 수천이 떠났습니다. 당의 열정이 사라졌습니다. 당의 재구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의당의 당원의 적지 않은 수를 민주당을 가라며 쫓아내는 태도는 비
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바라는 지도자가 있다면 탄핵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편협이고 무
능입니다. 민주주의는 사상이자 제도이며 또한 분열해서 통합하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 당원 대다수를 흔쾌히 설득하지 못하는데 어디서 다른 지지층을 새로이 찾을 수 있을지 모
르겠습니다. 더 잘 설계되고 더 설득력 있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더 왼쪽으로 가는 것이 항
상 정답은 아닙니다. ‘정치적 올바름’(편견과 차별 없는 언행)과 ‘정체성정치’(인종,성별,계
급종교 등의 집단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주력하는 정치)가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
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자칫 다른 불평등의 문제를 덮어버리거나 설득가능한 사람들을
내쳐버리는 위험을 가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 촛불 이후의 한국 , 디지털 세상에서 ‘민주주의나 진보나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갑
니다. 우리의 가치와 정책을 설득하는 능력이 핵심입니다. 정당은 주장의 올바름에서 머무
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변화의 성과, 권력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신뢰를 정치행동의 과
정에서 쌓아나가야 합니다. 그런 정의당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