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심정으로
- 2020-06-12 07:50:58
- 조회 1343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시당 당원 오승재입니다.
당 혁신 과정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의견 올립니다.
*
- 청소년 '예비당원' 제도를 폐지하고, 청소년 당원의 당권을 보장하십시오.
앞서 많은 당원님들께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만,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어 첫번째로 말씀을 드립니다.
정의당 '청년' 정치 시스템의 부재는 '청소년 예비당원' 제도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청소년 때부터 진보정당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 20대와 30대에 총리, 장관, 국회의원이 되는 외국 정치인의 사례를 보며,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정작 정의당은 정당의 구성원으로서 청소년에게 동등한 성원권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축구선수를 육성하겠다면서, 축구 경기가 이뤄지는 운동장 안쪽으로는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죽어라 밤낮으로 운동장 바깥 트랙만 뛰라고 훈련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공 한 번 제대로 차보지 못하게 하면서 그 사람을 축구선수로 키우겠다는 어불성설이 또 어디 있습니까?
정의당의 강령과 정책에 동의하고, 구성원으로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자발적으로 표시했다면, 그 사람은 '당원'입니다. 연령을 기준으로 하여 그 앞에 '예비'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청소년 당원에 대한 결례이자 모욕이라고 생각합니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운동장 안과 밖의 장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바깥에 있는 사람이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안에 있는 사람이 바깥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바깥을 잘 알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존중받지 못한 선수는 운동을 떠나는 대신 지금의 팀을 떠나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것을 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은 결국, 전적으로 우리의 손해입니다.
축구선수에게 공 한 번 차보지 못하게 하는 룰은 바뀌어야 합니다. 청소년 '예비당원' 제도 폐지와 청소년 당원의 당권 보장은 정의당 혁신위원회의 혁신에 대한 진정성과 실질적 역량을 확인하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의당의 '청년' 정치는 거대양당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
- '청년' 당원의 부문 정치 참여 활성화를 통한 정의당의 '플레이어' 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여섯시 반까지 여의도 국회 앞 중앙당사에 도착할 수 있는 일하는 청년 당원은 몇이나 될까. 정의당 청년 단위 주최 모임이나 집회에서 내가 느꼈던 외로움이나 위화감은 단순히 대인관계를 꾸려나가는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 그렇다면 소위 '정치적 리더십'은 무엇인가. 연신 헛웃음을 내뱉으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일? 일상의 점점이라고는 20대인 것이 전부인 분들에게 '동지'라고 말하며, 사회주의니, 맑스니 하는 단어를 주고받는 일? (...) 결국 청년 당원은 대학생 당원의 다른 말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대학생 당원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
지난 해, 당내 여러 청년 단위 주최로 '조국 사태 이후, 정의당의 방향을 다시 묻는다'는 이름의 토론회가 평일 오후 6시 30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다고 했을 때, 그에 대해 저는 위와 같이 적은 바 있습니다.
당시 분노에 차서 쓴 문장이지만, 비대학생 청년 당원의 심정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나마 담았다고 생각하여 인용해보았습니다. 정의당 청년 단위 주력 활동가 중 상당수는 대학생 당원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학생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구조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학생위원회'는 대학을 1차적 활동 기반으로 합니다. 때문에 각 부문 정치에 대해 상시적이고 적극적인 청년 당원의 결합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대학생이 아닌 청년 당원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지역위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청년 당원이라면 다행이지만, 지역위원회 활동의 경우 여러 상황과 여건에 따라 지역위원회 간 편차가 큰 상황입니다.)
그러나 익히 아시다시피 '청년'은 단일한 존재가 아닙니다. '청년'의 다른 이름은 여성, 노동자, 장애인, 이주민, 세입자, 성소수자입니다. 이러한 교차성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당원들이 계신 줄로 압니다만,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교차성을 관통하는 차별과 불평등은 온 힘을 다해 풀려고 애를 써도 풀 수 없는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것입니다. 알렉산더의 단칼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단칼이 있지도 않거니와 설령 있다고 해도 단숨에 잘라 끊어낼 수 없을 만큼, 한국 사회 차별과 불평등은 얽힐대로 얽혀 있습니다.
때문에 정의당의 '청년' 정치는 '교차성'을 기반으로 청년 당원이 다양한 부문 정치에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독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머리를 맞대고 여러 방향에서 매듭을 풀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합니다. '연령'에 기한 이슈를 매개로 한 '청년' 정치는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답은 청년이 각자의 위치와 정체성에 기한 부문 정치의 주체로서, 여러 개의 정치적 '복주머니'를 갖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주머니'를 얻기 위해서는 평소 부문위원회 간, 부문위원회와 지역위원회 간 상시적 협력 관계 구축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관계가 구축되는 것을 전제로, 당이 각 부문 정치에 청년 당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를 통해 정의당의 '플레이어'를 육성해내야 합니다. 공직선거를 출마하든, 당직을 맡든, 유사시 꺼낼 수 있는 확실한 카드를 만들어두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청년정의당 건설 과정에서, 이러한 지점이 반영되기를 바랍니다.
*
두서 없는 글이지만, 청년 당원의 한 사람으로 정의당 혁신위원회의 활동을 기대하며, 몇 자 적어 보냅니다. 솔직히 말하면, 당내외에서 많은 분들이 정의당 혁신위원회가 제대로 된 혁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일단 저는 당의 혁신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을 꼭 붙잡고, 혁신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방법으로 최대한 그 의구심을 지워보려 애써보고자 합니다. 항상 노고가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
#TO_정의당혁신위
저는 서울시당 당원 오승재입니다.
당 혁신 과정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의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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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예비당원' 제도를 폐지하고, 청소년 당원의 당권을 보장하십시오.
앞서 많은 당원님들께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만,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되어 첫번째로 말씀을 드립니다.
정의당 '청년' 정치 시스템의 부재는 '청소년 예비당원' 제도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청소년 때부터 진보정당에 가입하여 활동을 시작, 20대와 30대에 총리, 장관, 국회의원이 되는 외국 정치인의 사례를 보며,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정작 정의당은 정당의 구성원으로서 청소년에게 동등한 성원권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축구선수를 육성하겠다면서, 축구 경기가 이뤄지는 운동장 안쪽으로는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죽어라 밤낮으로 운동장 바깥 트랙만 뛰라고 훈련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공 한 번 제대로 차보지 못하게 하면서 그 사람을 축구선수로 키우겠다는 어불성설이 또 어디 있습니까?
정의당의 강령과 정책에 동의하고, 구성원으로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자발적으로 표시했다면, 그 사람은 '당원'입니다. 연령을 기준으로 하여 그 앞에 '예비'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청소년 당원에 대한 결례이자 모욕이라고 생각합니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운동장 안과 밖의 장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바깥에 있는 사람이 안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안에 있는 사람이 바깥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바깥을 잘 알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존중받지 못한 선수는 운동을 떠나는 대신 지금의 팀을 떠나 다른 팀으로 옮기는 것을 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은 결국, 전적으로 우리의 손해입니다.
축구선수에게 공 한 번 차보지 못하게 하는 룰은 바뀌어야 합니다. 청소년 '예비당원' 제도 폐지와 청소년 당원의 당권 보장은 정의당 혁신위원회의 혁신에 대한 진정성과 실질적 역량을 확인하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의당의 '청년' 정치는 거대양당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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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당원의 부문 정치 참여 활성화를 통한 정의당의 '플레이어' 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여섯시 반까지 여의도 국회 앞 중앙당사에 도착할 수 있는 일하는 청년 당원은 몇이나 될까. 정의당 청년 단위 주최 모임이나 집회에서 내가 느꼈던 외로움이나 위화감은 단순히 대인관계를 꾸려나가는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 그렇다면 소위 '정치적 리더십'은 무엇인가. 연신 헛웃음을 내뱉으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일? 일상의 점점이라고는 20대인 것이 전부인 분들에게 '동지'라고 말하며, 사회주의니, 맑스니 하는 단어를 주고받는 일? (...) 결국 청년 당원은 대학생 당원의 다른 말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대학생 당원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
지난 해, 당내 여러 청년 단위 주최로 '조국 사태 이후, 정의당의 방향을 다시 묻는다'는 이름의 토론회가 평일 오후 6시 30분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다고 했을 때, 그에 대해 저는 위와 같이 적은 바 있습니다.
당시 분노에 차서 쓴 문장이지만, 비대학생 청년 당원의 심정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나마 담았다고 생각하여 인용해보았습니다. 정의당 청년 단위 주력 활동가 중 상당수는 대학생 당원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학생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구조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학생위원회'는 대학을 1차적 활동 기반으로 합니다. 때문에 각 부문 정치에 대해 상시적이고 적극적인 청년 당원의 결합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대학생이 아닌 청년 당원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지역위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청년 당원이라면 다행이지만, 지역위원회 활동의 경우 여러 상황과 여건에 따라 지역위원회 간 편차가 큰 상황입니다.)
그러나 익히 아시다시피 '청년'은 단일한 존재가 아닙니다. '청년'의 다른 이름은 여성, 노동자, 장애인, 이주민, 세입자, 성소수자입니다. 이러한 교차성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당원들이 계신 줄로 압니다만,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교차성을 관통하는 차별과 불평등은 온 힘을 다해 풀려고 애를 써도 풀 수 없는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것입니다. 알렉산더의 단칼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단칼이 있지도 않거니와 설령 있다고 해도 단숨에 잘라 끊어낼 수 없을 만큼, 한국 사회 차별과 불평등은 얽힐대로 얽혀 있습니다.
때문에 정의당의 '청년' 정치는 '교차성'을 기반으로 청년 당원이 다양한 부문 정치에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독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머리를 맞대고 여러 방향에서 매듭을 풀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합니다. '연령'에 기한 이슈를 매개로 한 '청년' 정치는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해답은 청년이 각자의 위치와 정체성에 기한 부문 정치의 주체로서, 여러 개의 정치적 '복주머니'를 갖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주머니'를 얻기 위해서는 평소 부문위원회 간, 부문위원회와 지역위원회 간 상시적 협력 관계 구축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관계가 구축되는 것을 전제로, 당이 각 부문 정치에 청년 당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를 통해 정의당의 '플레이어'를 육성해내야 합니다. 공직선거를 출마하든, 당직을 맡든, 유사시 꺼낼 수 있는 확실한 카드를 만들어두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청년정의당 건설 과정에서, 이러한 지점이 반영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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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 없는 글이지만, 청년 당원의 한 사람으로 정의당 혁신위원회의 활동을 기대하며, 몇 자 적어 보냅니다. 솔직히 말하면, 당내외에서 많은 분들이 정의당 혁신위원회가 제대로 된 혁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일단 저는 당의 혁신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을 꼭 붙잡고, 혁신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방법으로 최대한 그 의구심을 지워보려 애써보고자 합니다. 항상 노고가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
#TO_정의당혁신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