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 정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자
- 2020-06-11 16:43:21
- 조회 1881
저는 요 근래 약 2년가량 정의당의 활동에 주의 깊게 관찰하며 많은 고민을 해 왔습니다. 정의당이 갖고 있는 정체성–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 모두가 존중을 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또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아 지난 총선을 계기로 당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원이 되었다는 것과 당의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입니다. 그렇기에 심상정 대표께서 당을 혁신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깊이 공감했습니다. 정의당에는 분명 발전할 부분이 많고 또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지난 총선 결과와 정당 지지율이 보여주는 것처럼, 아직 정의당이 집권당이 되기에는, 아니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4월에 열린 당내 모임에서 저는 처음으로 참석해 당원님들과 토론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진보를 향한 당원님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원분들이 이야기하던 진보정치의 이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한가지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정의당이 가야할 정치적 방향성에 관한 것입니다. 정의당 당원들이 진보에 대한 열망이 그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 바보 같은 것이라고, 진보 정치를 위해서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부분들을 다루지 않고 현제 정의당의 모습을 유지한다면 정의당은 목표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제안은 정치 전문가로의 이미지 변화입니다. 외부에서 보았을 때 정의당은 굉장히 래디컬한 정당으로 보입니다.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진보정당으로써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람들이 래디컬 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정당이 정치적인 역할을 하려면, 그 메시지를 래디컬한 것으로 보이게 하지 않고 시대에 맞는 것으로 다듬어 사회적 아젠다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정의당의 노력이 현저히 부족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정의당은 평등한 사회 건설이라는 아젠다를 설정하려고 노력하여 청년인사들과 여성 사회운동가들을 대거 영입하였지만 이러한 결정은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당, 미숙한 정당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많은 시민들의 눈을 돌려버렸습니다. 실제로 제가 친구들과 대화를 해 보면 외부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정의당은 사회 평등을 위해 싸우는 정당이 아니라 래디컬한 사람들이 모여 시위나 집회를 주도하는 정치 모임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의당이 취해온 정치적 발언들과 활동들로 인해 당의 메시지가 강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훼손되었음을 뜻합니다. 신문사의 지면이 우리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는 것도 메시지 전달의 오류가 생기는 원인 중 하나이겠지만 그것 만이 이유라고 인식해서는 절대로 혁신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영상 한가지 첨부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XhgPJzClLQ
영상을 보시며 불편한 마음이 드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잘못된 내용도 있고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게 180석이라는 전례 없는 숫자를 가능케 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고 노회찬 의원님 서거 당시 정의당의 지지율을 18%까지 끌어올렸던 범민주 진영의 지지자들의 대부분이 갖고 있는 생각일 것입니다. 조국 전 장관 논란 당시 정의당이 들고 일어나 비판했던 바로 그 논리는 화살이 되어 총선 당시 정의당에게 돌아왔습니다. 그 대상으로는 대표적으로 류호정 당선인으로 꼽을 수 있겠지요.
저는 이 문제의 원인을 감정적인 정당의 운영이라고 봅니다. 정의당을 정의당 답게 하는 부분을 이 감정적 운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바탕으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온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 운영 차원에 있어 감정적으로 사안들을 다루는 것은 위험합니다. 조국 논란과 류호정 당선인의 논란 당시의 정의당이 보여준 태도 차이도 그 감정적 운영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요. 청년들의 박탈감을 느끼게끔 했던 조국 전 장관의 임명 당시에는 당원들의 대부분이 청년 쪽에 더욱 깊이 공감했기에 다수의 손을 들어준 반면 류호정 당선인의 논란이 있었을 당시에는 같이 연대하고 투쟁했던 인사에 대한 공감이 더욱 깊게 작용하여 당 지도부는 여론이 좋지 못했던 류당선인을 안고 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정의당이 보여준 이런 선택적 포용은 정의당이 진보적 이념의 실현을 위해 싸우는 정당이 아니라 정의당이 감성적인 집단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범진보 진영에 심어주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일 이러한 사안에 당 지도부에서 감정적인 거리를 두었으면 어땠을까요? 진정성 있는 사과의 목소리가 나온다면 당 차원에서 사과를 받아들이고, 또 언론이 만들어낸 논쟁에 의해 조국 전 장관이나 류호정 당선인이 상징하는 진보적 메시지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지지를 표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범진보진영의 유권자들의 마음을 정의당으로 끌고 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차원에서 정의당의 지도부는 정의당이 추구하는 정의의 원칙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이에 따라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현제의 상황으로 보아서 “원칙을 지킵니다”는 정의당의 문구에서 “원칙”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당 지도부는 정의당이 말하는 정의의 원칙을 공포하고 정치적 사안들을 감정적으로 대처하기 보다 정당이 정한 정의의 원칙을 따르는 이성적인 집단으로의 모습을 보여야 정의당은 정치적 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인식을 퍼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